식탐정, 산들김치의 비밀을 찾아서

VVIP이신 @TheatreQ 님께서 산들묵은지를 맛보시곤 전국 팔도의 김치맛을 분석하며 산들김치 맛의 비밀을 추리하는 장문의 트윗을 남기셨습니다.

기승전-산들김치맛있어요로 끝나지만 그것보다는 추리과정이 흥미진진해, 허락을 얻어 모아봤습니다. 재밌게 보시길^^

@sandul88 김치 드디어 먹업봤는데염, 실례가 안 된다면 어머님 고향이 어딘지 알려주실 수…?

양념방식은 경상도 김치가 맞는데, 맛은 그렇지가 않아서 식탐정이 추리 중이어써요…;;

@TheatreQ 맛은 괜찮으시던가요?

@sandul88 아아주 맛있었습니다. 다만 먹던 식이 아니라 되게 낯서네요. 지난번 열무김치 때도 살짝 문화충격이긴 했습니다만. ^^;;;;

산들님께서 산들김치 시식을 던지시고 식탐정 추리의 해답편을 내놓으라고 외치시는데…. 트윗의 140자가 모자라 여기 적진 않도록 하겠습니다….는 아니고…. 아직 해법을 못 풀었습니다. 하지만! 할머니의 이름을 걸고! 끝까지 갑니다. 으르릉.

날도 갑자기 추워져 살얼음 살짝 낀 동치미국물에 밥말아먹는 계절이 다가오기도 했으니 김치썰을 좀 풀어보죠.

저희집도 음식이 퓨전된 편입니다. 양가가 전주 근처라 전주맛이 기본이긴 합니다만, 할머니께서는 서울에서 음식을 배운 충남분이시죠. 그리고 모친께서 호기심이 많아 누가 음식을 잘한다면 꼭 맛을보고 그날로 응용을 해봐야 발뻗고 주무신다능. ㅡ.ㅡ

자식들로 넘어오면 음식맛이 더 제각각입니다. 姐姐는 서울 토박이와 결혼해서 부엌의 소금을 블랙홀로 던져버리고 슴슴한 맛의 극치로 달려가고 있고, 저는 중국에서 이상한 조리법을 잔뜩 배워와 가문엔 없었던 튀김을 도입, 사파의 추종자라 지탄받고 있죠.

동생은 전남쪽과 결혼해서 이젠 입맛이 설탕을 부여안고 사는 형편이 되었습니다. 전남과 전북도 미묘하게 간맞추는 방식이 다릅니다. 이 차이는 결국 기후와 선택의 문제인데요.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겨울이 따뜻합니다. 저장식품에 투입하는 소금과 향신료도 달라질 수밖에 없죠. 경남과 경북이, 전남과 전북이, 다른 지역에서 보면 그맛이 그맛인 음식을 두고 저마다 다른 맛이라고 같이 묶지 말라고 라이벌 의식을 불태우는 이유가 있죠.

평야가 많은 지역은 위도에 따라 간이 달라지기 때문에 변화가 느슨하고 비슷비슷해보이지만, 산간이 많은 지역은 위도와 상관없이 폐쇄적인 자기 고향의 기후에 맞춰 간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강원/경상/함경쪽은 읍단위로 맛이 다른 곳이 많죠.

일례로 마창진을 들어볼께요. 지금은 도로가 잘 나서 한 노선의 버스가 한큐에 휘젓기도 할만큼 가까워서 마창진이란 이름으로 묶이는 마산 창원 진해지만, (미원교 신자가 아닌 이상) 연세가 있으신 분이 하시는 음식점에 가면 세 곳 맛이 완전히 다릅니다.

위도로 나누어 김치를 단순히 분류하면, 이북의 슴슴한 김치(생물을 듬뿍 넣고 소금을 적게 치고 동장군의 가호 아래 김장독을 맡기죠. 동장군께선 특히 동치미의 신이십니다. 은혜로우십니다), 중부의 살짝 짭쪼롬한 김치, 남쪽의 무척 짠 김치가 되겠습니다.

김치를 다시 동서로 나눠볼께요. 서쪽은 평야가 많고 갖가지 부재료가 흐드러지죠. 동쪽은 산간이 많아 향이 좋은 나물과 부재료가 있지만 그 양이 넉넉하진 않습니다. 서쪽은 강과 해로로 물자교환이 동쪽보단 쉽죠. 그 차이가 음식에도 반영이 되어요

이번엔 김치를 내륙과 해안으로 나눠보죠. 해안은 해물젓갈이 풍성하게 들어갈 수 있겠죠. 내륙은 소금도 귀하고 해산물 젓갈도 귀합니다. 강이 있는 지역은 민물에서 얻는 어류와 갑각류로 만든 젓갈을 응용하기도 해요.

지방마다 다른 김치맛, 사실 위도에 따라, 산간이냐 평야냐에 따라, 해안이냐 내륙이냐에 따라 조합을 맞춰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어요. “아~ 저 지역 특유의 김치맛은 그래서였네!”라고요. 참 쉽죠? (어서 베란다에서 허브를 뜯어와 팬에 넣으세요!)

자, 여기까지 이해하신 뒤라면 질문 하나 떠올리실 수 있겠는데요. 왜 전라도 김치는 짠 느낌이 없지?? 경상도 김치는 엄청 짜던데? 전라도가 경상도보다 더 추운가?? 이런 질문이 떠오르셨다면 당신도 식탐정의 자질이 있습니다.

전라도 김치, 여러분이 모르시던 비밀을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전라도 김치, 사실은 엄청 짭니다. 경상도 김치보다 더 짭니다.

전라도는 계절김치가 많이 발달해 있고, 계절김치는 다른 지역김치보다 훨씬 싱겁습니다. 푸성귀가 흔해서 그랬는지 별 걸 가지고도 다 김치를 담아 봄~가을을 쉽게 나기 때문에 전혀 짤 필요가 없어요. 겉절이와 맛김치의 천국입니다. 하지만 김장은 다르죠.

전라도 김치가 짠데도 안 짜게 느껴지는 비밀은 집집마다 비전(?)되는 젓갈칵테일의 레시피와, 나일강의 범람처럼 쏟아지는 걸쭉한 찹쌀풀과, 배추반 무반으로 투여되는 무채와, 융단폭격되는 향신야채들 때문이죠. 전남으로 가면 홍시와 과일 간 것까지.

당이 들어가면 짠맛과 매운맛이 숨겨집니다. 전라도 음식은 당을 엄청 쓰는데, 설탕보다는 과당 맥아당을 쓰기 때문에 은은하게 답니다. 전라도 김치나 장이 첫입에 맵다기보다 칼칼하게 뒤에서 치고 올라오는 매운 맛이 있는 이유가 그 때문이죠.

전라도 김치에 맛들인 분들이 다른 것은 못먹겠다고 아우성치는 이유가, 이 은은한 맥아당맛과 매운맛이 조화된 매력에 빠지기 때문이죠. 게다가 다양한 젓갈을 왕창 넣어 MSG 안 넣어도 글루타민산이 과부화상태입니다.

반면 전라도 김치가 쉽게 질린다고 기피하시는 분도 있어요. 뒷맛이 안 깔끔하고 끈적하고, 먹고 나서 물을 많이 찾게 되고, 먹을 땐 맛있지만 쉽게 물리게 된다고 말씀하시는 분도 적진 않습니다. 젓갈 냄새를 맡으면 비위 상한다시는 분도 있죠.

경상도 김치는 맛내는 방법이 전라도와 상당히 달라요. 굳이 매운맛 짠맛을 숨기지 않습니다. 당을 보충해줄만한 걸 많이 쓰지 않아요. 경상도 김치도 풀이 들어가지만 전라도에 비하면 적죠. 마늘 생강 많이 쓰지만 중부김치에 비해서 많다는 거죠.

경상도김치에 무채 거의 안씁니다. 젓갈 듬뿍 넣지만 그 맛을 덮어줄 향신야채를 많이 쓰지 못해요. 그래서 경상도 김치는 첫맛부터 찌르듯이 맵고 짭니다. 마늘 생강도 어느 만큼 넣었는지 바로 짐작이 되요. 추리하기 쉬운 김치, 경상도 김치 쉬운 김치.

어느 김치가 옳으냐가 아니죠. 기호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하면 됩니다. 첫맛부터 짜고 매운 경상도 김치도 손맛 좋은 분은 맛나게 담고요, 이맛저맛 조합이 생명인 전라도 김치도 손맛 엉망인 사람이 담으면 이맛도 저맛도 아닌 못먹을 맛이 될 수 있죠.

 

식탐정, 산들김치의 비밀을 밝혀라! 해답편이 너무 길어지고 있는 가운데…. 추워지는 밤 이 트윗 때문에 급히 밥 지어 김치 쭈욱 얹어 드실(찐고구마도 좋습니다) 트친 분들이 많아지실 것을 감안하여, 산들김치 해답편의 본추리에 들어갑니다.

산들김치 처음 풀었을 땐, 첫눈에 먹으나마나 경상도 김치라는 판단을 했고, 감칠맛이 적은 경상도 김치의 특성상 맨밥보다는 라면에 어울릴 거라 생각해서 라면을 끓여보았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전라도 김치와 라면은 좀 안 어울립니다)

제가 예상한 산들표 ( @sandul_pr ) 김치의 맛은 경상도 김치면서 맛있는 김치였죠. 진주 안동 같은 곳에서 맛봤던, 쉽게 꼬셔지는데도 멋진 이성….이 아니라 딱 알기 쉬운 맛이지만 맛난 그 김치. 근데 한 입 넣자마자 예상이 빗나갔습니다.

양념법이나 절여진 모양새나 생김새나 냄새나 갈 데 없이 경상도 상김치인데, 맛은 팍 찌르고 빠지는, “밀당은 와하노 부르면 퍼뜩 온나!”하고 외치던 그런 김치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거기서 저는 씹기를 멈추고 살짝 패닉에 빠졌습니다.

….이 김치…. 밀당을 한다. onz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 산들님네 김치의 비밀을 혼자 풀지 못했습니다. 총각무김치 레시피 sandulfood.kr/329 를 보고 알았죠. 풀과 다시물과 젓갈칵테일. 짠맛을 내놓고 즐기는 경상도 김치는 젓갈 칵테일이 섬세한 경우가 거의 없고, 다시물도 짠 바다맛이 그대로 나도록 우리죠.

여러 젓갈을 어울리도록 잘 배합하는 솜씨, 바다맛이 아니라 감칠맛이 나게 잘 우린 다시, 그리고 풀. 경상도김치는 풀도 양념이 붙을 정도로만 아슬아슬하게 넣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버무려놓은 사진을 보니 풍덩풍덩 넣으셨더군요.

아마 담그신 분께서 엄청 까다로운 입맛의 소유자이신가 봅니다. 성격도 대놓고 화끈하시다기보단 조금 신중한 편이 아닐까 제맘대로 짐작해보구요. 화통한 분들은 음식도 화통하게 하시는 경우가 많아서… 이 정도로 섬세하게 조절하시는 분이면 엄청 꼼꼼..;

팔도 김치는 왜 맛이 다른가에서 시작해서 얻어먹은 산들님네 김치의 비밀을 풀어라로 끝맺음…기승전-산들김치맛있어요로 끝나버리게 되었습니다만, 쌈야채 구입하는데 덤으로 주신 김치맛이 워낙 좋아 그 후기를 써보는 참에 팔도김치 이야기도 해봤습니다.

—–

(며칠 뒤… 정신을 차린 규원 님이 정답을 맞추셨습니다^^)

산들님네 김치를 설명하려고 “모양은 딱 갈 데 없는 경상도 김치..”까지만 말했는데 “아~~ 무채속 하나도 없는 김치?”라든가 “배추만 보이는 김치?”라는 반응이 백퍼센트… 끄응… 묵은지 만들 때는 다른 동네도 속야채 안 넣는 일이 많은디.

어쩌다 속없는 김치가 경상도 김치의 대명사가 되었누…;;

@sandul88 어머님 고향이 사천이라든가 통영이라든가 뭐 그런 동네인가염..? 생해물을 호쾌하게 넣으시네염. ^^

@sandul88 경상도 군읍면단위 다 나올 기세… ㅋㅋㅋㅋ 근데 호남이라니용? 젓갈칵테일을 설마 나주나 담양에서 배우신 건 아니겠죵?

@sandul88 근데 농담이 아니라 젓갈 칵텔 만드는 발상과 풀죽 분량은 호남스타일과 몹시 비슷했습니다. 엄청 부잣집안이셨을 것 같다는 라는 추리도 잠시 해봤…;;

@TheatreQ 그건 정답! 과수원을 크게 했었다는군요.

@sandul88 ….역시….;; 하늘이 내린 미맹유전자를 대물림한 경우가 아닌 한은, 부잣집 음식은 지역색을 초월하는 호사스러움이 넘치는 경우가 많더군요.

대개 과일집•과수원집 후손들이 입이 까다롭다. 솜씨는 별개라도. 싱싱하고 고급스러운 단맛이 뭔지를 너무 잘 안달까.

@TheatreQ 글쵸. 그런데 또 엄니 스타일이 할머니 스타일과도 다르다는 거.

@sandul88 저희 집도 그래요. 외할머니 스타일은 젓갈 50종류를 직접 담가놓고 끼니때마다 반찬 10가지+젓갈 다섯가지 펼쳐놓고 드셨는데, 엄니는 메인 한가지를 아주 크게 하시는 스타일로 바뀌셔서..;;

@sandul88 근데 산들님 어머님께선 상당히 창의적이세요. 어디서 딱히 물려받았다기엔 계통을 종잡기 어렵게 섞고 실험한 결과물 같은 그런 맛이라… 실험정신이 투철하신 듯합니다.

@TheatreQ 오 역시 식탐정. 김치 하나로 정답을 딱!

@sandul88 김치 외모와 젓갈칵테일의 모순에 잠시 정신줄을 놓았다가 이제야 제대로 된 추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끄응.

(보너스)

고추가루가 없던 시절의 조선김치가 대략 이랬을까 싶었던 이북김치를 맛본 적이 있는데, 흔히 알려진 동치미•백김치와는 다른, 침채에 가까운 김치였다. 슴슴하게 절군 배추•무에 생강 마늘을 듬뿍 넣고 오래 파묻었다가 꺼내어 질금질금 끈적끈적한 모양새.

무슨 배추낫또도 아니고 모양이 참 낯설었고 맛은 고릿하면서도 시원한 탄산장아찌같은 맛이었다. 물김치도 아닌 것이 그냥 김치도 아닌 것이. 그 맛을 본 게 평안도 어느골에 살다 내려왔다던 삼팔따라지 집안. 상업화된 이북김치와는 완전히 다르더라.

한국과 기후가 다르고 젓갈공수가 어려운 해외에서 2~3대 살아온 교포집안의 김치는 또 다르다. 새콤하게 익질 않고 배추가 물러버리는 일이 많으니 식초를 펑펑 넣는 경우도 많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식초 넣은 김치를 제법 봤다. 처음엔 교포가 직접 담가 판다기에 맛도 안 보고 덥썩 샀다가 식초김치라는 걸 확인하고 당황했던 일이 있었지…

나중에 누군가 김치의 생활사 같은 걸 쓴다면, 해외 교포들의 김치와 밑반찬 문화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다뤄줬음 좋겠다. 그것도 엄연히 유서있는 음식문화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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